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보이보디나 자치주 (문단 편집) === 근대 === 헝가리 왕국이 멸망한 이후 [[합스부르크 제국]]과 신성 동맹은 사투 끝에 [[빈 공방전|2차 빈 포위전]]에서 오스만 제국에 대승리를 거두었다.(1683년) 수비에서 [[대튀르크 전쟁|반격에 나선]] 합스부르크 제국은 ~~담당 일진~~ '''[[사부아 공자 외젠]]'''의 활약에 힘입어, [[카를로비츠 조약|헝가리 왕국 전역을 탈환]]하는데 성공했다. 이 시기에 외젠 공은 오늘날 보이보디나 자치주 북부에 위치한 젠타에서 티서 강[* 오늘날 헝가리를 지나 보이보디나에서 도나우에 합류하는 도나우 강의 주요 지류 중 하나]을 도하 중이던 오스만 군 5만을 포착하여 이를 격파하는 등([[대튀르크 전쟁#s-3.11|젠타전투,]]1697년) 헝가리와 오늘날의 보이보디나 지역 탈환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헝가리 왕국 전체를 획득했으나 특히 국경 지대인 남부 지역은 오랜 전쟁으로 인해 황폐화되고 인구가 크게 감소하였다. 전후복구를 위해 18세기 동안 합스부르크 제국 전역에서 여러 민족[* [[독일인]], [[헝가리인]], [[슬로바키아인]], [[루테니아인]] 등]이 이주했으며, 오스만 제국의 [[불가리아인]]도 흘러들어왔다. 특히, 독일인이 매우 많이 이주했는데, 이는 전후복구를 겸사하여 독립의식이 강한 헝가리인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이 당시의 대규모 이주민 정착은 오늘날 보이보디나 자치주의 인종적 다양성의 기원이 되었다. [[보이보디나 공국]] 문서 참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